은혜소식
한기홍 목사님 목회와 신학 인터뷰 전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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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웹지기 | 댓글 0건 | 조회 9,904회 | 작성일 11-08-20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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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한인교회 한기홍 목사 인터뷰

자기를 부인하여 행복한 목회

·일시 2011년 5월 30일
·장소 은혜한인교회 담임 목사실
·진행 최원준 편집장
·사진 박동진 객원 기자

웅장함과 드넓음. 기자의 눈에 들어온 은혜한인교회에 대한 첫 번째 인상이다. 교회의 본질이 건물과 외형에 있지 않지만, 눈을 사로잡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않겠는가? 2010년 새롭게 건축한 은혜한인교회는 대지가 26.5에이커, 약 3만 3,000평이다. 이 넓은 대지 위에 세 개의 건물이 서 있다. 본당격인 비전 센터는 극장식으로 되어 있으며 2,5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이민 교회들이 대형 집회를 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다양한 행사를 할 수 있는 일종의 ‘컨벤션 센터’로 지었다고 한다.
다른 두 건물은 은혜한인교회의 세계 선교 사역을 총괄하는 본부격인 세계 선교 센터와 차세대를 위한 교육관 미러클 센터다. 기자가 방문한 날은 마침 미국의 현충일이었는데, 교회 이곳저곳에서 성도들이 무리를 지어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굳이 다른 곳으로 놀러 갈 이유가 없을 만큼 교회는 성도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었다.
1982년 5월 김광신 목사가 세 가정으로 시작한 은혜한인교회는 2004년 9월 이후 제2대 담임 목사인 한기홍 목사가 섬기고 있다. 원래 한기홍 목사는 신학이 아닌 정치학을 하기 위해 유학을 왔다. 유학생 시절 출석한 교회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전도사와 부목사 생활을 한 곳도 은혜한인교회였다. 1992년 샌디에이고 갈보리장로교회 담임 목사로 청빙되어 12년간 섬기다가 2004년 모 교회인 은혜한인교회로 왔다. 한국 교회 목회 경험이 없는 100% 이민 교회 목회자다.
현재 차세대를 포함하여 주일 출석 인원이 약 5,000여 명인 대형 교회로 성장한 은혜한인교회는 주님의 지상 명령(마 28:19~20)을 수행하는 교회가 되겠다는 비전을 갖고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교회를 셀 교회로 바꾸었고, 셀 교회 운영을 G12에 따라 하고 있다. 현재 400여 명의 셀 처치 목자들이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보수 합동 교단에 소속되어 있으나, 성령 체험에 매우 개방적이다.

행복한 목사는 복음에 사로잡혔다
“교회를 크게 하던 작게 하던 목회자는 행복해야 합니다. 목회자가 행복해야 교회가 행복하고, 행복한 교회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목회자가 행복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생각을 해 보면, 교인 수가 늘지 않기 때문에, 때로는 교회 건축이 안 되고, 또 여러 가지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좌절합니다. 제가 1992년에 샌디에이고 갈보리장로교회에 부임해 갔을 때 그 교회 성도가 70명 정도 됐습니다. 싸움이 나서 갈라졌습니다. 이민 교회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교회에서 잘 지내다가도 싸우면 그 앞에다가 개척을 합니다. 이런 일들이 사실 이민 목회의 제일 문제이고 아픔이라고 할 수 있어요. 수틀리면 개척을 하고 나누어집니다.
제가 그런 교회에 청빙을 받아서 갔어요. 저는 대형 교회 부목사로 사역을 하다가 그런 어려운 교회에 담임을 하러 간 케이스이거든요. 그런데 그것이 저에게는 고생이라고 느껴지지 않았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보면서 저들이 복음을 확실히 제대로 깨닫는다면 행복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이민 목회든 한국 목회든 선교 목회든 저는 다 같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목회자가 복음을 확실히 전해야 합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복음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사역이죠. 목회를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느냐가 곧 자기가 목회를 어떻게 하고 있느냐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서 목회를 교육이라고 생각한다면 분명히 그 사람은 목회를 가르치는 데에 집중할 것입니다. 목회를 구제라고 생각하면 매일 구제하는 일만 하고 있을 거란 말이죠.”

목회는 생명 목회다
“저는 목회는 생명을 주고 생명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의 생명을 주셨잖아요. 결국 그것을 통해서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진 것처럼 결국 목회자가 자기를 줘서 그 복음을 통해서 생명을 얻는 일이 목회입니다. 내가 목회를 하면서 얼마나 영혼을 구원했는가, 정말 복음이 전해졌는가가 중요하죠.
저는 불신자를 보면 견딜 수가 없어요. ‘아, 이사람 지옥 가면 어떻게 하나.’ 이 사람이 사회적 지위가 뭐래도 그 사람의 영혼이 보입니다. ‘아, 이 사람 정말 불쌍한데, 예수님을 믿어야 할 텐데.’ 행복한 신앙생활은 누구나 하기를 원하는데 예수님을 만나야 행복해질 수 있지 예수님 만나지 않고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 목회 철학이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만나게 할 것이냐에 있습니다. 신구약 66권의 주제가 예수님인데 예수 그리스도가 전해질 수 있는 사역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거죠.
갈보리장로교회에 가서 제가 설교한 것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추었더니 그렇게 싸우고 행복이 없던 교회가 정말 행복해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변화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떠나오기 전에 아이들을 포함해서 1,300명까지 부흥했습니다.
사실 샌디에이고에는 한인들이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였죠. 진짜 목회자 마음 가운데 영혼이 보이는가, 아니면 재력과 능력이 있는 사람이 오기를 바라고 있는가? 인간을 상대로 한 목회는 결국 실망을 할 수밖에 없고, 다 탈진을 하는 거죠. 그런데 한 사람이라도 복음을 제대로 알 수 있다면 정말 주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시니깐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겁니다. 목회자 마음이 내가 목회하는 것에 행복한가,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목회자여 자기를 부인하라
“분열된 교회 목회자들을 만나 보면 상처가 너무 커요. 성도에게 당한 상처가. 그런데 또 성도들을 만나 보면 목회자에게 당한 상처가 너무 큰 거예요. 그럼 결국은 쌍방이 문제라고 볼 수 있지만 저는 목회자의 문제라고 봅니다. 결국 목회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자들인데 어떤 공격을 받고 어떤 어려움을 당해도 예수님을 쫓아가는 것에서는 내 생각이 있을 수 없는 것이죠. 이것이 곧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라고 생각한다면 십자가를 져야 하는 거죠. 주님이 그냥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 지고 따르라고 하셨거든요. 우리에게 십자가는 당연한 거죠. 목회를 한다면 당연히 십자가를 지는 것이지 십자가 없는 목회가 있을 수 있느냐 말이죠.
어떤 분들은 그 교회는 장로가 문제고, 교회 시스템이 문제고, 어떤 경우에는 당회를 다 없애 버려야 한다고 극단적으로 말하면서, 그렇게 하면 행복한 교회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 그분들이 필요하단 말이에요. 결국은 목회자가 어떻게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지 본을 보이는 만큼 달라집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말했잖아요.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 이건 엄청난 말이거든요. 적어도 성도들에게 ‘담임 목사와 같이 예수님을 믿으시오, 나만큼 예수님를 믿으시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말이에요. 바울이 엄청난 고난 속에서 사역했지만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랐기 때문입니다.
진짜 이민 목회를 잘 하려면 예수님의 동질성과 분리성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인간과 다르지만, 동시에 참인간이시라는 점에서 인간과 같으시잖아요? 바로 목회자가 그렇게 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자가 인간이기에 성도들과 함께하지만, 또한 성도들과 다른 무엇인가 있어야 합니다. 그 다르다는 것은 거룩함이라고 봅니다. 성도들과 같이는 하지만 우리 목사님은 뭔가 다르다, 이것이 단순히 목사라는 포지션에서 나타나는 권위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거룩함으로 구별되는 권위라고 봅니다.
그 권위는 부단히 목회자가 헌신하고 노력함으로 세워지는 참된 권위입니다. 내가 포지션에서 오는 권위를 주장했을 때는 권위가 전혀 발휘될 수 없습니다. 이민 목회가 왜 힘드냐 하면, 동질성은 되는데, 목사로서 이 포지션 권위가 한국 교회는 나름대로 성도들이 인정해 주지만 이민 목회는 목사라고 해서 인정해 주지 않는 풍토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으뜸이 되고자 하면 종이 되고, 섬김을 받고자 하느냐 섬기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예요. 이민 목회에서 진짜 목사로 대우받고 권위를 인정받으려면 종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 말씀 그대로 섬길 자신이 없으면 이민 목회는 안 됩니다.”

기도
“저는 처음 주님을 만난 후부터 기도하는 시간을 참 많이 가졌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일단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져요. 혹시나 내가 거룩하지 못한 부분이 있나, 잘못된 부분이 있나, 이런 것들을 쭉 성찰해 보고 하나님 앞에 그런 문제들을 가지고 가서 기도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지혜를 주시는 거예요. 주님이 목회하는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세상에 보이기를 원합니다.
목사는 부족한데 어떻게 저렇게 교회가 잘되나,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진짜 하나님이 하셨다는 칭찬이 있기를 원합니다. 이게 제가 늘 기도해 왔던 부분이고 지금도 그렇게 기도를 하고 있죠.”

나를 통해 잘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다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교회가 똑같이 문제가 생기고 똑같이 일들이 생기지만 결국은 지도자가 어떤 자세인가가 중요합니다. 또 한 가지는 제 마음 가운데, 나를 만나서 성도들이고 부교역자들이고 모두 잘되어야 한다, 내가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이런 마음가짐을 늘 가지고 있어요. 사람을 만나 이야기해 보면 이 사람이 나를 도우려고 하나 이용하려고 하나 느끼지 않습니까? 도우려고 한다는 것이 느껴지면 금방 친구가 되는 것이지요.
제가 갈보리교회에 가서도 그곳 장로님들이 목사 내쫓았다는 소문도 있고, 그런 악평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제가 장로님들에게도 그랬습니다. ‘장로님들, 지금까지 신앙생활 어떻게 하셨던지 상관없습니다. 제가 일단 담임 목사가 되었고 저와 함께 사역하는 동안에는 장로님들이 천국 가서 면류관 받아쓰는 장로님들이 되어야 합니다. 진짜 장로님들이 하나님 앞에 참 아름답게 칭찬받는 그런 성도님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내 사명이라고 봅니다.
부교역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통해서 우리 교역자들이 잘되어야 합니다. 내가 통로가 되서 다리가 되어서 나를 밟고 성공하라고 말합니다.’ 저의 진심을 성도들이 느끼면서 성도들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 같아요. 아 우리 목사님 정말 성도들을 사랑하는구나, 이런 부분들이 리더십이 세워지는 데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봅니다. 그 장로님들이 중심으로 자신들을 사랑하는 것이 느껴지니까, 그 다음부터 그렇게 깐깐하던 장로님들이 순종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아론과 훌처럼 도우려고 하는 그런 자세로 바뀌더라고요.”

가룟유다까지 품어야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은혜교회가 제 모교회입니다. 고향에서 선지자가 대접받기 어렵다고 했는데, 여기 증경 장로님들이 제가 가난한 신학생 시절 사정을 다 아시는 분들이 저의 리더십을 인정하고, 그렇게 아름답게 섬길 수 있느냐는 거죠. 내가 이분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이 전달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배제되고 자꾸 목사님들이 자기 포지션을 앞세우는 거예요. ‘내가 담임 목사면 내 얘기를 들어야할 것 아닙니까? 내가 이렇게 하겠다는데 왜 반대를 하십니까?’ 이렇게 대립 갈등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목회자예요. 어떤 장로도 나쁜 사람은 없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해요.
목사가 양도 만들 수 있고, 염소도 만들 수 있다고 보는 거예요. 사탄이 가룟 유다 속에 들어가니까 마귀 짓을 하지 않습니까. 가룟 유다도 원래는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와 안 싸우셨어요. 안타까워하셨죠. 결국 가룟 유다까지 품으신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가룟 유다 잘라 버립니다. 그러면 가룟 유다는 나가서 당짓고 투쟁을 하는 거예요. 이게 끊임없이 교회에서 반복되고 있잖아요. 예수님은 가룟 유다를 품으셨다고요. 예수님이 당하셨잖아요. 목회자가 어디까지 품을 수 있느냐? 유다까지 품어야 합니다.
한번은 당회에서 어려운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어떤 장로님이 그러더라고요. ‘목사님은 화도 안 나십니까?’ 목사님을 유심히 관찰을 했는데, 내가 30대부터 장로 생활을 해서 20년 넘게 많은 목사님을 보아 왔는데 목사님은 목사님한테 그렇게 갈등하는 장로도 품더라는 거예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장로님은 권사님과 한 번도 안 싸우느냐고, 어떤 일을 결정할 때 항상 좋으시냐고, 싸우시죠. 싸워도 왜 같이 살아요. 가족이니깐 그런 거 아니에요. 우리는 장로가 이렇게 많은데 서로 의견이 다른 게 당연한 거지. 목사 이야기한 대로 다 하면 공산당이지. 그게 더 안 좋다고 생각한다. 브레이크도 필요하다. 장로님은 가족 아니냐.’ 그랬더니 나를 끌어안고 울더란 말이죠.
우리가 가족인데 왜 싸우냔 말이에요. 진짜 적은 사탄 마귀인데, 그들과 싸워야지 아군들끼리 왜 싸웁니까? 물론 평신도들이 제대로 훈련 못 받아서 그런 사람을 리더로 세울 때 문제를 일으키는 일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현실이지만 내가 일단 담임 목회자가 되었다면 그것까지도 나에게 주신 십자가가 아닙니까. 먼저 그 부분을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파악할 수 있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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